종 목 | 국보 제24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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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동궐도(東闕圖) |
분 류 | 유물 / 일반회화/ 기록화/ 궁궐도 |
수량/면적 | 2종2점 |
소 재 지 |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박물관, 부산시 서구 동아대학교 |
시 대 | 조선시대 |
소 유 자 | 고려대학교,동아대학교 |
관 리 자 | 고려대학교,동아대학교 |
일반설명 | 전문설명 본궁인 경복궁 동쪽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것으로 동궐도(東闕圖)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2점의 궁궐그림이다.
크기는 가로 576㎝, 세로 273㎝로 16첩 병풍으로 꾸며져 있다. 오른쪽 위에서 비껴 내려 보는 시각으로 산과 언덕에 둘러싸인 두 궁의 전각과 다리, 담장은 물론 연꽃과 괴석 등 조경까지 실제와 같은 모습으로 선명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배경이 되는 산과 언덕에 대한 묘사는 중국 남종화의 준법을 따르고 있으나, 건물의 표현과 원근 처리에 있어서는 서양화 기법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또 다른 그림도 똑같은 형식과 기법, 크기를 하고 있으나 채색을 하고 검은 글씨로 건물의 명칭을 써 넣은 점이 다르다. 그림에 들어있는 건물들의 소실여부와 재건된 연대 등으로 짐작하여 순조 30년(1830) 이전에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두 점의 그림은 회화적 가치보다는 궁궐 건물 연구에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평면도인 궁궐지나 동궐도형보다 건물 배치나 전경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어 고증적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보물 제596호 궁궐도(동아대학교 소장)가 형식·기법·크기 등이 동일한 것으로 판명되어, 1995년 6월 23일 보물 제596호를 지정해제하고 국보 제249호 동궐도로 승격지정함. 조선후기 순조년간(純祖年間)에 도화서화원(圖畵署畵員)들이 동궐(東闕)인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의 전각(殿閣) 및 궁궐전경(宮闕全景)을 조감도식으로 그린 궁궐배치도(宮闕配置圖)이다. 모두 16폭으로 되어 있으며 1폭은 상하 6면으로 접혀져 있는데 첩자(帖子)로 장황(粧潢)되었다. 첩(帖)의 표면(表面)은 청색견(靑色絹)으로 포장(包裝)했으며 표면(表面)에는 적색지(赤色紙)로 외곽을 두른 조그마한 장방형(長方形)의 백견(白絹)에 " 동궐도(東闕圖) 인일(人一)"이란 표제(表題)가 있으며 나머지 16첩도 첩수(帖數)만 달리 적고 있다. 이를 미루어 보면 천(天)과 지(地)의 각각 다른 궁궐도(宮闕圖)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매면(每面) 36.5X45.5㎝ 크기의 백견(白絹)에 그려진 화첩(畵帖) 6면(面)을 위아래로 연접(連接)하여 첩자(帖子)로 만든 것이 16첩(帖)으로 되어 있다. 이 16첩으로 된 화폭(畵幅)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쳐서 이으면 총 길이가 576㎝, 세로273㎝나 된다. 이 동궐도(東闕圖)는 채색(彩色)을 써서 입체적으로 그린 조감도(鳥瞰圖)로서 자연의 구릉(九陵)과 릉선(稜線)과 산곡(山谷)과 평지(平地)와 여기에 자생(自生)한 수목(樹木)을 감안하고 계류(溪流) 등을 이용하여 궁장(宮墻)·전각(殿閣)·재실(齋室)·낭방(廊房)·당청(堂廳) 등이 상세하게 나타나 있는데 각종 건물 명칭은 묵서(墨書)되어 있다.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제작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순조실록(純祖實錄) 30년 경인(庚寅)(1830) 8월조(月條)에 "창경궁(昌慶宮) 환경전(歡慶殿)에서의 실화(失火)로 공묵각(恭默閣)·함인정(涵仁亭)등 전각(殿閣)이 일시(一時)에 소실(燒失)되었다." 하였고, 궁궐지(宮闕誌) 창경궁(昌慶宮) 환경전조(歡慶殿條)에도 동일한 내용의 기사(記事)와 함께 순조(純祖) 33년(1833)에 중건(重建)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동궐도(東闕圖)에는 환경전(歡慶殿) 등 기타 전각(殿閣)이 그려져 있으며 기타 문헌과 이 동궐도(東闕圖)에 나타난 건물과 관련지어 고찰해 보면 순조(純祖) 30년(1830)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확인된다. 작자(作者)는 구체적인 이름을 밝힐 수는 없으나 이 동궐도(東闕圖)는 특색(特色)이 적은 의궤도(儀軌圖)의 일종(一種)으로서 그 기법(技法), 화풍(畵風), 그리고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이 그리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동궐도(東闕圖) 역시 도화서 화원의 소작(所作)으로 보고 있다. 이 동궐도(東闕圖)는 화려하고 장엄했던 옛 궁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각 전각(殿閣)들의 명칭이 자세히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사(科學技術史)의 자료로서 매우 중요한 각종 건물(建物)·시설(施設)·명칭(名稱)등이 상세하게 나타나 있으며 특히 관측기구(觀測機具)·관측대(觀測臺)·누각(漏閣)·관서(官署)의 위치와 명칭(名稱) 등은 다른 자료에서 보기 드문 것들이며 작자(作者)는 확실치 않으나 도화서화원(圖畵署畵員)의 원숙하고도 절묘한 기법으로 그린 예술작품(藝術作品)이며 궁궐지(宮闕誌)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여 화재(火災) 등으로 소실(燒失)된 현재의 궁궐들을 복원(復元)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이는 당시에 유행했던 화풍(畵風)을 알 수 있는 회화사연구자료(繪畵史硏究資料)일 뿐만 아니라 건축(建築)·조경(造景)·과학기술사(科學技術史)·궁궐사(宮闕史) 등 각 분야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동궐도 전경. 고려대 박물관의 대표유물은 이 그림이다. 별생각없이 갔다가 완전 대박!
◆돈화문-염천교-진선문-인정문-인정전까지 정말 자세하게 기록해놓았다.
◆일요일임에도 구경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정말 한적하게 자세히 구경할수 있었다.
◆돈화문. 현재의 돈화문과 비교해보면 월대가 있는것이 틀린점이다.
◆인정전. 우측 행랑쪽은은 일제시대를 거치며 많이 소실되었던것 같다.
◆앞쪽 끝부터 희정당- 대조전- 징광루(경훈각)이다. 1917년 화재로 불탄 뒤 희정당은 경복궁의 강녕전을, 대조전은 교태전을 옮겨왔다. 따라서 저 그림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또한 청기와 2층건물인 경훈각(징광루)는 복원되지 않았다.
1910년대의 징광루
◆부용지와 규장각. 정조대왕시절 이곳에서 인재들과 수많은 업적을 이룬곳이다.
◆창경궁 명전전일대
◆지금은 후원으로 넘어가는 길목으로 변한 중희당. 지금은 터만 남아있고, 우측일부 복도로만 남아있다.
◆이곳이 낙선재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 그림이 1830년대쯤 그려진것으로 추정되는데, 낙선재는 이후 지어졌다
◆창경궁. 많은 부분 일제시대때 헐리고 심지어는 동물원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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