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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5

유신독재 '중정의 추억'이 남아있는 '의릉' [우리 동네 역사체험] 박정희 낚시터로 전락...30여년 만에야 공개 도시 사람들에게 제주의 ‘올레길 걷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복잡한 일상에 업무 과다로 피로한 현대인들에게 올레는 제주의 자연을 걷는 행위만으로도 심신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다. 그래서인지 지리산 둘레길, 강화 역사유적길 등 다른 곳도 많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도시 사람들이 모두 훌쩍 제주로 떠날 수는 없는 일. 주말 연인과 함께, 아이 손을 잡고 내가 사는 곳, 우리 동네 나만의 산책길을 걸으며 일상에 지친 영혼을 씻어낸다면 그것이 바로 '올레'가 아니겠는가. 필자는 거대한 도시 서울에서만 31년 동안 살아왔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앞으로 연재를 통해 주로 서울에 있는 문화유적지와 산책하기 좋은 길을 소개하고자 한.. 2010. 2. 19.
문화재 관리의 씁쓸함 연산군묘를 다녀온뒤 씁쓸하더라구요. 13년간이나 조선의 임금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다 폐위되어 왕릉이 아닌 일개 묘라고 하더라도 문화재 관리가 너무 허술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조선도 아니고 지금은 나라가 새로 세워진뒤 60년이 다 되어가는데 말입니다. 연산군에 대한 평가가 좋을리야 없겠지만 역사적인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역사적 교육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인물인데요. 아파트숲사이에 주차장도 없이 해설사 1명이 관리하는 연산군묘...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기록된다지만 조선후기왕들도 연산군만큼 별로인것 같은데 별 공적도 없이 빈둥빈둥 몇개월 재위하여 역사적으로 교육할게 없는 왕들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후손들의 지극정성 관리를 받는데요. 광해군의 묘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비슷하다고 하네요... 2010. 2. 10.
비오는날 쓸쓸한 '연산군묘' 조선 10대 연산군(재위 1494∼1506)과 부인 거창 신씨의 무덤이다. 연산군은 성종의 큰 아들로 성종 7년(1476)에 태어나 1494년 왕위에 올랐다. 두번씩이나 사화를 일으키는 등 성품의 광폭함이 드러나자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이 일어나, 1506년 왕직을 박탈당하고 연산군으로 강봉되어 강화 교동으로 추방되었다가, 그 해 1506년에 죽었다. 부인 신씨가 연산군 무덤을 강화에서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 달라 청하여 옮기게 되었다. 무덤 주변에는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무덤도 있으며, 혼유석·장명등·향로석 등 석물이 서 있다. 묘비석 앞면에는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 새겨 있고, 뒷면에는 ‘정덕팔년이월이십일장’이라 새겨 있다. 1) 우선, 묘역이나 구성 석물들이 오랜 기간동안 방치되고 제대.. 2010. 2. 9.
090707 의릉을 다녀오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조선의 왕릉이 선정되었다. 예전에는 한양밖에 위치한 의릉, 광릉,선릉등 서울에도 가까운 왕릉이 존재한다. 오랜기간 시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던 왕릉은 보존이 비교적 잘되어있다. ◆홍살문 ◆홍살문과 정자각 ◆의릉 ◆정자각 ◆잡상 @ 정자각 ◆답도 ◆정자각내부 ◆경종의 부인 순원왕후묘 ◆무인석 ◆문인석 ◆수호하는 동물들 ◆경종의 무덤 2009.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