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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순천 낙안읍성/산성에서 읍성으로

by 블루청춘 2010. 8. 27.

한국의 성곽은 산성과 읍성으로 나눌 수 있다. 읍성과 산성은 종종 한 쌍을 이루는 보완관계에 있다. 산을 등지고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에는 읍성을 쌓아 도시의 경계로 삼고, 뒷산 정상에는 산성을 쌓았다. 산성이 방어용 성곽이라면, 읍성은 행정용 성곽이었던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읍성은 행정적인 기능과 군사적인 기능이 잘 조화된 복합적 기능의 성곽(城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고창의 모양성(牟陽城)처럼 읍성 자체가 방어 목적을 겸하도록 견고하게 쌓은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매우 허술한 구조물이었다

 평소에는 읍성에서 생활을 하다가 외적이 침입한 유사시에는 산성에 올라 성문을 굳게 잠그고 항전했다. 산성을 에워싼 적군들이 지쳐 물러나 농성(籠城)에 성공하게 되면 그것이 곧 승리였다. 백제의 부여와 부소산성, 신라의 경주와 명활산성, 조선의 한양성과 북한산성 등이 읍성과 산성의 이원적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패전은 물론 승리를 했을 때조차 문제는 심각했다. 외적이 물러난 뒤 읍성에 가보면 이미 읍성은 갖은 약탈과 파괴로 폐허가 돼있기 때문이다. 백성의 삶터는 물론 관청 하나 변변히 남아 있지 않은 잿더미에서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일찌기 유형원(柳馨遠)을 비롯한 실학자들은 이러한 모순을 실랄히 비판하며 읍성강화론을 폈다. 읍성을 산성처럼 견고하게 쌓고 방어에 유리한 구조로 바꾸어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읍성에서 항전하며 생활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지극히 상식적인 읍성 방어의 주장은 한반도 지형의 특성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7할이 넘는 산지 지형은 약간의 노력으로도 방어에 효율적인 산성을 구축할 수 있었고, 평지의 읍성에 과도한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는 여론을 형성했다.
 읍치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아 비록 적국의 손에 넘겨줬다고 하더라도 크게 잃을 것이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사실 읍성이라고 해야 행정관서가 대부분으로 수ㅜ백호에 불과한 소규모 타운이었다. 조선조 인구의 대부분은 읍성에서 떨어진 자연부락에 산재해 있었고 읍성이 생활의 터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제성 또한 문제가 됐다. 산성과 읍성을 보두 축조하자면 비용이 두 배로 든다. 또 생활과 유리된 산성을 보존 관리하는 데는 막대한 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따라서 읍성을 튼튼히 쌓는 것이 경제적인 면에서도 큰 이득이 된다.

이러한 주장이 본격적으로 수용된 곳이 바로 수원 화성이다. 수원 화성은 방어용 성곽 가운데서도 가정 튼튼하고 실용적이다.
읍성방어의 개념에는 이른바 '민본사상'이 근본을 이루었다. 전쟁은 누구를 위해서 치루는가? 지방수령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다. 따라서 일반 백성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하려면 읍성자체를 방어하고 보호해야 한다.
도성인 한양 성곽의 높이가 6m 정도인 데 비해, 화성 성곽은 8m가 넘는다. 또 기존의 산성에서는 소홀히 다루었던 여러가지 군사용 시설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기존의 산성은 흙을 다져 쌓은 토성이거나 혹은 큰 돌로 구축한 석성이었다. 그런데 토성은 완만한 성벽의 경사 때문에 방어에 불리했으며, 석성은 일부만 무너져도 전체가 허물어지는 구조적 취약점이 있었다. 수원 화성은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돌의 크기를 줄이는 동시에 일부분에 벽돌을 사용했다. 작은돌은 운반과 축성을 용이하게 해 공사의 효율성을 높여주었으며, 벽돌은 성곽 전체의 견고함을 더했다.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순천 낙안읍성은 국가 사적 제
302호로, 조계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조 태조 6(서기 1397)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김빈길 장군이 흙으로 축조한 것을 인조 4~6(서기 1626~1628) 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돌로 쌓아 만든 것으로, 높이 3m짜리 성곽만도 약 1400m에 달한다. 성 안에는 동헌·낙안루·낙안객사·돌샘과 주민이 거주하는 크고 작은 초가집 140여 채가 놓여져 있다. 성밖에도 초가집 57여 채가 있어 낙안읍성 성 내외 초가집 200여 채에는 모두 120세대, 280여 주민이 소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생활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하다.
주변의 넓은 농경지와 과수원은 풍요로움을 더한다. 최근 들어 낙안배와 청정오이 등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가을이면 성안 초가 지붕 위에 누런 호박과 감나무에 매달린 연시 등이 넉넉함을 말한다. 밥 때에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가 마을을 덮는 풍경은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 정감 어리게 다가온다.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월 보름이면 임경업 장군 비각에서 제를 올리고 널뛰기와 그네뛰기, 성곽돌기 등 다양한 민속행사를 열고 있다. 순천시는 10여 년 전부터 봄에는 민속문화축제를 열고, 가을에는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도록 ‘남도음식문화축제를 열어 관광객에게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