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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서울

이태원 이슬람사원 , 무슬림문화

by 블루청춘 2010. 9. 27.


내가 태어난 곳이자 갓난아기때 살던 이태원동, 보광동
그곳에는 이슬람사원이 있다. 미국의 부시를 비롯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중동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충돌하면서 우리에게는 약간의 편견이 있는 곳이 이곳인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이슬람신도들이 있고, 외국인 밀집지역인 이태원동에 이슬람 사원이 있는 것이다.


6.25 한국전쟁이후 용산8군지역에 미군이 주둔하게 된다. 이후로 용산 이태원을 중심으로 외국의 공사관들이 들어서면서 이태원은 국제적인 거리로 조성되게 된다. 
현재도 루마니아, 아르헨티나 대사관을 비롯한 여러국가들의 대사관들이 이태원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백인, 흑인, 동남아시아인, 중동지방인등 많은 외국인들과 음식점들이 위치해있다.

 [이슬람사원의 둥근지붕을 모스크라고 하는데,
모스크는 특유의 둥근 지붕과 건물을 둘러싼 미나레트라 불리는 첨탑이 특징적이다. 벽면은 불교탱화기독교성화, 스테인드글라스와 달리 쿠란의 구절이나 아라베스크 무늬로 장식한다. 이는 이슬람교무함마드의 초상화 등 종교에 관련된 그림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무슬림이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세계로 퍼져나가게 됨에 따라 모스크 역시 세계 곳곳에 지어졌다. 640년 아랍인에 의해 이집트에 이슬람교가 전파되면서 수도 카이로에는 수많은 모스크가 세워졌다. 이 때문에 카이로는 "천 개의 첨탑이 있는 도시"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1] 이집트의 모스크는 이슬람 학교인 마드라사의 역할을 겸했는데 이는 다른 곳의 모스크가 병원이나 무덤의 역할을 하였던 것과 대비된다]

이태원역 3번출구로 나와 던킨도너츠골목으로 10분정도 올라가면 이슬람사원을 만나게 된다.
정문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 분의 사도입니다"라는 문구를 만나게된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은 알라신이라 부르며 기독교의 하나님과 유사하다.
다만 기독교와 교리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인반면,
이슬람은 예언자이자 무슬림의 동경의 대상이라한다...(정확한 교리는 공부를 더해야겠음..)

그러나 이슬람은 하나님외에 예수, 성모마리아의 신격화를 부정하지만,
배타적이지는 않다. 또한 술, 간음, 살인등을 금하고 절제와 평화를 강조한다.
9.11테러와 수아파와 수니파의 분쟁등으로 인해 생긴 편견을 버리고 바라보면 조금더 이해하기 쉽다.

7세기 무함마드가 창립한 이슬람교가 전해진 것은 통일신라 이후 교역을 통해 교류를 통하서이다.
'고려 현종 15년 예성강의 국제항인 벽란도에서는 대식국상인 10여명이 왕에게 토산품을 바쳤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때만해도 중앙아시와의 교역이 활발했지만, 유교근본주의인 조선을 맞이하면서 이들과의 교역은 뜸해진다.

 
이후 1920년 소련공산당을 피해 터키계 무슬림 200여명이 조선으로 망명을 하였고,
신도가 생기기 시작한 시기는 한국전쟁에서 터키군이 참전하면서 부터이다.
이슬람국가인 터키가 UN군으로 참전하면서 군종인 이만포교에 의해 한국무슬림 1세대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후 이슬람교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된 계기는 1975년 석유파동이후이다.
박정희정부는 석유난을 타개하기 위해 친중동 정책을 펴게되고, 현재 이곳 이태원동에 이슬람사원땅을 불하한다.
이에 아랍권의 재정적 지원으로 1976년 5월 이슬람 사원(중앙모스크)이 건립된다. (내가 약 2~3살때인 80년대 초반 여기서 찍은 사진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때에도 외부인들에게 개방을 한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사원건립이후 3년만에 이슬람신도는 5배정도 급증하여 약 1만5천명정도로 늘었다.
흔히들 박정희정권시절 산업역군이라 불리던 중동에 파견된 건설노동자들중에도 자발적으로 이슬람신도가 되어 한국인들중에도 약 7천여명의 이슬람신도가 생기게된 시기가 이 시기라 한다.

그렇게 발전하게되던 이슬람교는 80년대 중반이후, 중동과의 교류가 냉각되고 90년대초 이라크전쟁 참전등으로 중동권국가와 어색한 사이가 되면서 국내의 이슬람교도 약간의 정체기를 겪게된다.
그러나 지금도 이슬람교도들은 확장되어 현재 한국인 3만5천명을 포함하여 10만여명의 신도가 있다. 또한 전국적으로 7개의 성전이 있으며, 부산 남산동에는 100m에 이르는 이슬람거리가 조성되기도 하였다.


얼떨결에 들여다본 내부모습은 의외로 썰렁하였다. 둥근 중앙천장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오고 안에는 몇몇의 신도들이 경전을 보거나, 절을 올리고 있었다.

또한 내부를 들여다보려면 안내사무소의 허가를 받아야 되는줄 모르고 나는 대뜸 안으로 들어섰지만,
2층의 남성 예배당은 여성들의 입장이 제한된다.(그곳의 문화는 그대로 인정하자.)
3층에 여성예배당이 있다.
여성들은 미니스커트, 민소매, 짧은바지등을 입었을시에는 안내사무소에서 히잡(피부의 노출을 가릴수 있는 천)을 빌려준다.

나와서 발견한 안내문


아라베스크 무늬
'아라비아풍'이란 뜻의 아라베스크 무늬는 문자, 식물, 기하학등이 곡석과 직선으로 융합된 독특한 문양이다.
우상숭배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기에 벽면에는 어떠한 그림도 그릴수 없었기에,
이러한 기하학적인 문양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또한 중앙 모스크의 위와 첨탑위에는 초승달모양의 장식이 있다.
터키, 말레이시아등 이슬람권의 국기에 초승달이 있었던것을 떠올려보면 이슬람의 상징이 초승달이란것을 알수있다.
어둠을 뚫고 빛의 광명이 떠오를때 달의 모습을 진리라고 형상화 한것이라고 한다.

사원 주위에는 무슬림들을 위한 식료품점들이 즐비해있다.

한때 미군범죄와 퇴폐문화의 거리라 여겨지던 이태원거리가 무슬림들이 많아지면서 한결 차분해졌다고 한다.
실제로 어릴적 기억하는 이태원거리는 술에취해 비틀거리는 미군들과 술집이 많았던 반면,
현재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각국의 음식을 맛볼수 있는 국제적인 거리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 가. 중동의 범주
  • 중동(Middle East)은 동지중해부터 페르시아만까지 이르는 지역을 뜻하는데, 그 범주가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나, 전통적으로 이집트에서부터 아라비아 반도 및 이란 등을 포함.
  • "Middle East"라는 용어는 1900년경 유럽을 중심으로 "Orient(동양)"를 지정학적으로 "Near East(근동)", Middle East(중동), "Far East(극동) 등으로 구분한 데서 유래함.
  • 중동 지역내 구분 - 걸프지역(The Persian Gulf)은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 사이의 만(gulf)인 페르시아만 일대를 가리키며, 연안국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오만 등임
  • ※ GCC(Gulf Cooperation Council)
  • -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걸프만 주변에서 발생한 정치적 불안(이란혁명,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란-이라크 전쟁 등)에 대한 공동대응책을 모색하기위해 인근 국가들이 아부다비에 모여 결성한 지역협력기구
  • - 회원국(6) : 사우디, 쿠웨이트, UAE, 카타르, 오만, 바레인
  • - 경제 및 안보협력을 목표로 하며, ‘08.1.1 GCC 공동시장 출범
  • - 마그레브(Maghreb)는 아랍어로 “서쪽”이라는 뜻으로 아라비아 반도 기준 서쪽에 위치한 북서아프리카 지역(이집트,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모리타니)을 지칭함.
  • - 레반트(Levant)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의 ‘해가 뜬다’를 뜻하는 lever, levare에서 유래하여, 역사적으로 지중해 동쪽 지역을 의미하며, 1920년 프랑스의 시리아, 레바논 점령 후부터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이 레반트 국가로 불림.
  •  
  • 나. 인구
  • 중동 지역의 인구는 민족적으로는 아랍인, 페르시아, 유대인, 쿠르드족, 아르메니아, 베르베르인, 누비아인 등으로 분류되며, 종교적으로는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 조로아스터교인, 바하이교인 등으로 분류됨. 이들은 아랍어, 페르시아어, 히브리어, 쿠르드어 등을 사용함.  중동 지역 사람들의 조상은 셈족과 함족으로 알려져 있음.
  • ※ 전통적으로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의 자손들이 각각 셈족, 함족, 아리안족이 되었다고 알려짐.
  • - 셈족(Semitic)은 고대 아시리아인, 아라비아인, 바빌로니아인, 페니키아인, 유대인 등을 포함하며, 오늘날 아랍어, 히브리어 등 셈어를 사용하는 중동 사람들을 일컬음.
  • - 함(Hamitic)족은 아프리카 동부와 북부에 사는 이집트인, 소말리아인, 에티오피아인들을 일컬음.
  • - 아리안(Aryan)족은 오늘날 유럽인들의 선조로 알려짐.
  •  
  • 다. 아랍과 아랍인의 정의
  • 대체로 '아랍'과 ‘중동’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 쉬운데, 이들은 서로 조금씩 다른 개념으로, 아랍은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나라들의 집합체로, 아랍연맹 22개국이 아랍 세계를 구성하고 있음.약 3억 아랍 인구는 전체 무슬림의 5분의 2를 차지하고, 아랍인과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으로 결속되어 있음.
  • ※ 아랍연맹이 창립시 채택한 '아랍인'의 정의
  • - ‘아랍 국가에 살고, 아랍어를 사용하며, 아랍의 염원을 공유하는 사람’
  • ※ 아랍연맹(Arab League): ‘45년 카이로에서 창설된 아랍국가들의 연합기구
  • * 회원국(22개)
  • - 팔레스타인, 이라크,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리비아, 아랍에미레이트, 사우디, 오만,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예멘, 수단, 모리타니, 소말리아, 지부티, 코모로공화국
  • 제2차 세계대전이후 독립한 신생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 건국 이후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를 사상적 기반으로 ‘아랍민족주의’를 주창, 이집트의 Gamal Nasser를 선봉으로 아랍의 정치적 통합을 위해 노력함.
  • ※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이집트와 시리아가 통일아랍공화국(Unites Arab Republic: UAR, 1958~1961)의 국명 하에 통합, Muammar Al-Qadaafi의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 통합(Federation of Arab Republic) 시도 등이 아랍민족주의의 대표적 예임.
  • 2. 우리나라와의 관계
    • 가. 초기 단계(건국 이후-1950년대) : 중동과의 교류 일천
    • 이 시기 우리 정부는 국제적 승인의 획득, 군사 원조의 확보, 미국 및 서구중심의 진영외교를 통한 핵심 우방국들과의 기존 관계 강화를 대외정책의 목표로 설정하고, 건국 초기의 혼란, 한국 전쟁의 후유증, 군사원조 확보, 국가 방위 체제 강화 필요성 등의 요인이 작용하면서 對美/유엔 외교에 치중함. 중동제국과는 유엔총회에서의 한국문제 토의에 대처하는 차원에서 약간의 접촉만 시도하는 수준이었음.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동국가들과의 교류는 없었으며, 정부 차원은 물론 민간 차원에서의 문화적 접촉 역시 거의 전무하였음.
    •  
    • 나. 1960년대 : 중동에 대한 외교 다변화 모색의 시기
    • 대내적으로는 허정 과도정부, 민주당 정부, 5.16 군사혁명 정부로의 변화 과정에서 실리 추구 및 외교 다변화 모색하였으며, 특히 제3공화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개방 외교정책 추진하였음. 대외적으로 △ 동ㆍ서 진영 간 데탕트의 시작, △ 아프리카 지역을 위시한 신생 독립국의 대거 탄생 등 새로운 외교 환경의 대두에 따라 對중동외교를 강화하였음. 1961.12 이집트와의 영사관계 수립을 시작으로 이스라엘(1962.4), 요르단(1962.7), 모로코(1962.9), 사우디(1962.10), 이란(1962.10), 모리타니아(1963.7), 튀니지(1969.3) 등과 수교함. 그러나, △ 이스라엘과의 수교, △ 1967년 제 3차 중동전에 따른 이스라엘-아랍간 대립 격화, △ 주한 이스라엘대사관 개설(1969.9) 등은 우리의 대중동 관계 개선 노력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였음. 따라서 이 시기 중동과의 경제적 관계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며, 튀니지와의 문화협정 체결(1967.7.)외 문화적 측면에서의 교류도 미미하였음.
    •  
    • 다. 1970년대 : 대중동 외교정책의 전환 및 확대기
    • 1973.6.23 남북한평화통일 외교선언 발표에 따른 할슈타인 원칙의 포기, 미ㆍ소 간 데탕트 심화에 따른 탈냉전기의 발전으로 인한 미ㆍ일ㆍ중ㆍ소ㆍEC의 다극체제 출현 등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대중동정책이 전환되기 시작하였음. 특히 미 ㆍ 소의 중동에 대한 세력 다툼에서 미국의 우위는 한국의 對중동 진출을 적극화 하는 계기로 작용함. 한편, 1973 제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비동맹외교 수준으로 접근하던 중동외교를 친아랍정책으로 전환하였고, 이를 기점으로 중동에 대한 경제적 진출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음.
    •  
    • 라. 1980년대 : 적극적 친아랍 정책 추진 시기
    • 이 시기 우리는 대미 안보 협력 체제의 강화와 함께, △ 제3세계와의 관계 강화를 통한 자원의 장기 안정적 공급 확보, △ 6.23 선언에 입각한 대공산권 및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대북한 압도적 우위 달성을 주요 외교적 목표로 설정하였고, 경제적 측면에서는 안정적 석유 공급원 및 건설 시장의 확보를 위한 적극적 친아랍 정책을 추진하였음.
    •  
    • 마. 1990년대 :  상대적인 침체의 시기
    • 1980년대말 이후 △ 아랍권의 온건화, △ 한국의 경제발전에 따른 국제적 위상 제고, △ 아랍과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 정책의 균형화에 힘입어 일부 급진적 아랍 국가와도 수교하였음. 그러나, △ 1990년 걸프전 발발에 따른 우리 건설업체들의 철수, △1997년 금융위기 등 국내 ㆍ 외 사정에 따라 대중동 경제협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외교적 관심도 일시적으로 후퇴하였음.
    •  
    • 바. 국민의 정부
    • 1990년대 말 국민의 정부 들어 한-중동 관계는 정치, 경제 분야에서 다시 활발해 지기 시작하였음. 활발한 고위급 인사 교류를 통해 한-중동간 협력 관계가 활성화되었음. 뿐만 아니라, 2000년 이후 점차 고유가 시대가 다시 도래하면서 중동 국가들은 에너지 관련 플랜트 및 사회 인프라 건설을 재개하였고, 이에 우리 정부는 중동 산유국들과의 공동위, 정책협의회 등 양자 협력 채널을 활성화하는 등 우리 기업들의 중동 건설ㆍ플랜트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적극적 세일즈 외교를 전개하였음.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상원조를 확대시키는 등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우리 정부의 중동 평화 및 경제발전을 위한 지원도 더욱 확대되었음.
    •  
    • 사. 참여정부
    • 적극적이고 활발한 대중동외교는 참여정부에도 유지되어, 2007년 3월 한ㆍGCC간 FTA 추진, GCC국가들의 탈석유 산업화 노력 지원 등을 내용으로 하는 ‘21세기 한ㆍ중동 미래협력 구상’을 발표하는 등 우리 정부는 대중동외교를 기존의 양자외교의 틀을 넘어 지역협력 외교로 확대 발전시켰음. 한편, 2004년 이라크 평화 정착과 전후 재건 지원을 위해 쿠르드 지역인 아르빌에 파견된 ‘자이툰’ 부대는 2008년 12월 철수시까지 평화 유지 및 재건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함. 국민의 정부 들어 고위 인사교류를 통한 협력 관계의 활성화하고, 우리기업의 중동 건설 및 플랜트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적극적 세일즈 외교를 전개하였음.
    •  
    • 아. 현 정부
    • 2008년 2월 현 정부 출범 이래 우리의 대중동외교는 ‘글로벌 네트워크 외교’의 기치 하에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있음. 특히 2003년부터 다시 급등하기 시작한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우리 정부는 중동 산유국 주요 인사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정부가 2008년 8월 아랍 22개국과 공동으로 민ㆍ관 합동 비영리 재단인 한-아랍 소사이어티(Korea-Arab Society)를 창설 등에서도 보여지듯이 사회, 문화 분야의 교류도 확장되었음. 09.12월 우리의 UAE 원전 수주, 그리고 중동 국가들의 신국가발전 계획 수립 등을 계기로 對중동 경제협력 강화를 위한 대내외 여건이 성숙됨. 정부는 중동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더욱 확대하여 국제테러리즘, 이라크 재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란 핵문제 등 중동 문제 해결을 위한 기여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음.
    •  
    • 자. 결론
    • 우리의 대중동외교의 역사는 비교적 짧고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다소 늦은 편이나. 중동이 원유, 천연 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의 보유고이자 우리의 주요 해외 건설시장인데다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이 지역 20여개 국가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 한-중동간 우호·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갈 필요를 절감하고 있음. 따라서 외교통상부는 중동 지역과 경제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 3. 중동지역 다자기구 현황
    • 가. 걸프협력이사회(GCC : Gulf Cooperation Council)   - 1981년 5월 설립되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소재함. 걸프지역 국가간 제반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하며 회원국으로는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UAE가 있음.   - 홈페이지 : www.gcc-sg.org
    •  
    • 나. 경제협력기구(ECO : Economic Cooperation Organization)   - 1985년 설립되었으며, 이란 테헤란에 소재함. 회원국간 경제협력 및 주요 협력분야(교통·통신·우편·투자 등)의 증진을 목적으로 함. 회원국은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이란,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이며, 북(北)사이프러스는 특별 초청 지위에 있음.     - 홈페이지 : www.ecosecretariat.org
    •  
    • 다. 사헬-사하라 국가공동체(CEN-SAD : Community of Sahel-Saharan States)   - 1998년 2월 설립되어 리비아 트리폴리에 소재함. 기업 설립권, 소유권 및 자유로운 경제.무역활동 보장을 위한 기관으로 회원국은 북부 및 중앙아프리카 지역 28개국임.    - 홈페이지: www.cen-sad.org
    •  
    • 라. 석유수출기구(OPEC : 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 1960년 9월 설립되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소재하며, 회원국의 석유정책을 통일 및 조정하고 이익 보호를 목적으로 함. 회원국으로 알제리,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리비아, 나이지리아,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UAE, 베네수엘라 등이 있음.   - 홈페이지 : www.opec.org
    •  
    • 마. 아랍경제통합이사회(CAEU : Council of Arab Economic Unity)   - 1957년 6월 설립되었고, 요르단 암만에 소재함. 아랍연맹 산하기관으로서 관세동맹을 추구하고 시장과 원자재에 관한 조사 및 통계 등을 수행함. 회원국으로는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리비아, 모리타니,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멘, 팔레스타인이 있음.
    •  
    • 바. 아랍 마그레브 연맹 (Arab Maghreb Union : UMA 또는 AMU)   - 1989년 2월 설립되어 모로코 라바트에 소재함. 북아프리카 지역내 아랍국가간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기관으로 회원국은 알제리, 리비아, 모리타니, 모로코, 튀니지 등 5개국임.   - 홈페이지 : www.maghrebarabe.org
    •  
    • 사. 아랍 사회경제 개발기금(AFESD : Arab Fund for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 1968년 5월 설립되어 쿠웨이트 사파트에 소재하며, 아랍국가의 경제 및 사회개발 프로젝트 재정 지원을 위한 아랍연맹 산하기관임. 회원국은 아랍연맹 회원국 중 코모로를 제외한 20개국임.   - 홈페이지 : www.arabfund.org
    •  
    • 아. 아랍 석유 수출기구(OAPEC : Organization of Arab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 1968년 1월 설립되어 쿠웨이트 사파트에 소재함. 아랍 산유회원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석유산업과 관련한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기관임. 회원국으로는 알제리, 바레인, 이집트, 이란, 쿠웨이트, 리비아,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UAE가 있음.   - 홈페이지 : www.oapecorg.org
    •  
    • 자. 아랍연맹(AL : League of Arab States)   - 1945년 3월 설립된 아랍지역 최대의 연합체로서 사무국은 이집트 카이로에 위치해 있으며, 회원국간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분야의 협력과 정책 조정 및 결속 강화를 목적으로 함. 회원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예멘,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수단, 소말리아, 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모리타니, 모로코, 코모로, 지부티, UAE 등 총 21개국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있음.   - 홈페이지 : www.arableagueonline.org
    •  
    • 차. 아랍 자유무역지대(AFTZ : Arab Free Trade Zone)   - 1998년 1월1일부터 2007년 12월31일까지 아랍국가간 교역 강화를 위해 지정됨. 회원국은 아랍연맹 회원국 중 알제리, 코모로, 지부티, 모리타니를 제외한 18개국임.
    •  
    • 카. 아랍통화기금 (AMF : Arab Monetary Fund)   - 아랍연맹의 산하기관인 AMF는 1976년 4월 설립되어 UAE 아부다비에 소재하며, 회원국의 국제수지(BOP) 불균형을 완화하고 환율, 재정, 금융 등 경제 분야 관련 지원 및 정책 수립을 목적으로 함. 회원국은 코모로를 제외한 아랍연맹 회원국임.     ※ 이라크, 소말리아, 수단은 1993년 7월 이후 채무불이행으로 회원자격이 정지됨. (단, 수단은 2000년 4월 회원자격 회복)   - 홈페이지 : www.amf.org.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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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 아랍협력이사회(ACC : Arab Cooperation Council)   - 1989년 2월 설립, 요르단 암만에 소재하며 역내 공동시장 형성을 포함한 주요 경제정책 조정 및 통합 도모를 목적으로 함. 회원국으로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예멘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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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 아프리카 아랍 경제개발은행(BADEA 또는 ABEDA : Arab Bank for Economic Development in Africa)   - 1974년 2월 설립, 수단 카르툼에 위치해 있음. 아랍 및 아프리카 지역 국가간 경제, 재정, 기술 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유대를 공고화하기 위한 기구임. 회원국은 아랍연맹 회원국 중 소말리아, 예멘, 코모로, 지부티를 제외한 18개국임.   - 홈페이지 : www.bad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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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 이슬람회의기구(OIC : Organization of the Islamic Conference)   - 1969년 9월에 첫 정상회의를 개최한 후, 1971년 5월 정식 출범함. 사우디아라비아 젯다에 소재하며, 회원국간 이슬람 유대강화와 경제·사회·문화·과학 등 제반 분야에서의 협력강화를 목적으로 함. 회원국은 이슬람 57개국임.   - 홈페이지 : www.oic-oc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