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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경주

경주 양동마을

by 블루청춘 2010. 9. 2.

10여 년 전 어느 봄날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끼어 앉아 관광버스에 올랐다. 노래와 수다로 가득 찬 버스가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수학여행 일번지 경주.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던지 밤엔 놀고 낮엔 조느라 늘 눈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경주=통일신라’라는 간단한 공식만이 덩그러니 남았을 뿐이다.

 


천년의 도시 경주를 재발견한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동아리 선후배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밟게 되자 경주는 더 이상 그렇고 그런 수학여행지가 아니었다. 문화재 답사 여행지로만 생각한 경주에 아련한 추억과 애틋한 감정이 녹아내렸다. 경주 소읍기행지로 ‘천년의 역사와 문화’만을 담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시대 양반마을이 경상북도 경주에 있다. 화려한 통일신라 유적지에 가려 아는 사람만 아는 곳. 양동마을은 조용하게 양반마을의 명색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 ‘양동마을’을 전통 한옥마을로 소개받았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한옥전통마을을 몇 번 접해서이기도 하고 유네스코 지정문화유산이 즐비한 경주에서 조선시대 문화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한 몫을 했다.

 

그렇지만 경주 시내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설창산 줄기에서 내려오자마자 거짓말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500년 전 조선시대를 담아놓은 고풍스러운 가옥과 정자, 강학당 등 전통가옥들이 빼곡히 들어차있다.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 내려 네 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물()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다. 마을 입구가 아닌 뒤쪽 언덕에서 내려오니 기와집과 초가집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잘 정돈된 집과 대문, 돌담과 나무가 흡사 민속촌 같다는 생각도 잠시. 집 안쪽에서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나오신다. 자신의 집을 들여다보았기에 놀라야 하는 사람은 집 주인인데도 오히려 방문객이 흠칫 놀란다. 집주인은 익숙한 눈치다. 마을 안내를 해준 이지휴 문화해설사는 “사람이 사는 집이기 때문에 그렇게 안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실례”라며 귀띔해준다. 양동마을에는 기원전 4세기 이전에 사람의 거주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여주 이씨와 경주 손씨 가문 400여 세대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영남대에서 발간한 <경북지방고문서집성>에 의하면 여강(驪江 또는 驪州) 이씨인 이광호씨가 마을에 거주하기 시작해 손녀사위 풍덕 류씨 류복하씨가 처가에 들어와 살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15세기 중반 경주 손씨가 류복하 무남독녀와 결혼해 양동으로 이주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양동마을을 외손마을이라 부르는데 조선초기까지만 해도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양동마을에는 국보 1, 보물 4점을 비롯해 총 24점의 문화재가 있다. 게다가 마을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양동마을은 일 년 내내 공사 중이다. 물론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은 아니다. 지붕의 초가를 다시 얹고 한옥을 개보수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한다. 한평생 마을을 지킨 이동병(73) 할아버지는 “초가집은 여름에 벌레가 나오고, 기와집은 겨울에 위풍이 세다”며 한옥에 사는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대대로 이어온 전통을 지키고 사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자부심을 표현했다. 취재를 갔던 날은 경주 손씨 가문의 문중 제사가 있던 날이었다. 한복을 입은 어르신이 엄숙하게 제사준비를 하는 모습 속에 전통을 지키는 양반 가문의 자존심이 묻어난다.

 

남쪽 지방으로 갈수록 개방적인 구조를 갖는 전통한옥구조와 달리 양동마을의 집은 모두 폐쇄적이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영남학파의 전통을 잇고 있어 집의 구조도 자연스레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사랑방, 안방, 행랑방, 책방 등이 구분 지어 연결되고 안채로 들어가는 입구는 모두 따로 나 있다. 이렇게 ㅁ자를 이루고 있는 집은 막혀 있는 듯 보이지만 구석구석 뚫려 있어 외부와 소통한다. 손님이 많아 요리가 잦은 집의 부엌은 천장을 뚫어 음식의 열기를 빼낸다. 일명 ‘노천부엌‘이다. 자연채광을 염두에 두어 작은 마당을 집 구석구석 낸 점도 눈에 띈다. 하늘을 담고 있는 ‘햇빛우물‘이 폐쇄적인 가옥에 빛을 퍼 올린다. 양동마을은 이미 영화인들에게 유명한 촬영지다. 영화 <취화선>, <내 마음의 풍금>, <혈의 누>, <스캔들>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마을에는 관가정, 수운정, 안락정, 영귀정, 심수정, 설천정사, 양졸정, 동호정, 내곡정, 육위정 등 무려 10개의 정자가 있다. 조상을 추모하고 자손의 강학을 위해 지은 정자는 여름에는 우거진 숲 속 매미 우는 소리와 어울려 멋과 풍류를 더욱 자아낸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서니 150여 호의 고가옥과 초가집이 골짜기와 능선을 따라 500여 년 전통을 뽐내고 있다.

 

 

취재를 갔던 날 수학여행을 온 고등학생 일행 관광버스가 양동마을을 찾았다. 한껏 신이 난 학생 행렬은 이리 저리 뛰고 장난치며 어느새 양동마을의 주인이 돼 있다. 해설을 맡은 선생님의 말씀은 안중에 없는 듯 양동마을의 돌담길을 누비고 다닌다. 한 시간 남짓 서 있던 버스가 돌아가고 나자 마을은 다시 평온해진다. 양동마을은 해설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한다. 미리 예약만 하면 해설을 들으며 마을 구석구석을 볼 수 있다. 하촌, 물봉골, 내곡, 두곡, 향단 코스로 이뤄져 있는 양동 문화재를 두루 돌아보려면 한나절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지관 이장은 “관광지라기보다는 사람이 직접 사는 마을이기 때문에 전통과 예절을 꼭 지켜 달라”고 당부한다. 그는 “안채까지 무작정 들어오거나 창호지를 뚫어 방문을 보는 사람도 있다”며 “전통문화 체험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니 양동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관람문화를 만들어가자”고 조언한다. 최근 마을 양동초등학교는 전통 문화를 익히기 위해 일부러 전학 오는 학생들까지 있어 전교생이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양동마을의 전통과 문화는 현재에도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봄을 맞은 양동마을에는 동백꽃과 개나리가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통일신라가 아닌 조선시대의 경주를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 시대를 초월해 세대를 이어가는 양동마을에서는 꽃향기만큼 진한 전통의 내음새를 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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