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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학습62

문화재 관리의 씁쓸함 연산군묘를 다녀온뒤 씁쓸하더라구요. 13년간이나 조선의 임금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다 폐위되어 왕릉이 아닌 일개 묘라고 하더라도 문화재 관리가 너무 허술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조선도 아니고 지금은 나라가 새로 세워진뒤 60년이 다 되어가는데 말입니다. 연산군에 대한 평가가 좋을리야 없겠지만 역사적인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역사적 교육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인물인데요. 아파트숲사이에 주차장도 없이 해설사 1명이 관리하는 연산군묘...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기록된다지만 조선후기왕들도 연산군만큼 별로인것 같은데 별 공적도 없이 빈둥빈둥 몇개월 재위하여 역사적으로 교육할게 없는 왕들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후손들의 지극정성 관리를 받는데요. 광해군의 묘는 가보지는 않았지만 비슷하다고 하네요... 2010. 2. 10.
청계천의 철새와 생태 청계천은 단기간의 졸속공사로 인하여 콘크리트위에 흙을 덮어 만들어진 인공하천이다. 청계천의 물은 한강물 10만t+ 인근 지하철역에서 발생하는 용수 2만t 정도를 끌어와 청계광장, 동대문, 성북천등에서 흘려보내진다. 그러나 청계천은 정기적으로 녹조현상이 나타난다. 한강물에 포함되어 있는 다량의 플랑크톤등이 침식되면서 생기고 녹조뒤에 포자라는 미생물이 발생한다. 또한 콘크리트로 덮어 지표면과 숨을 쉬지 못하는 아래의 토양때문에 자연정화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녹조와 이끼가 미관상 좋지 않아 정기적으로 수많은 인력이 바닥과 돌의 이끼를 청소하고는 있지만 역부족인듯 하다. 따라서 환경운동하는 사람들은 청계천을 가리켜 콘크리트 어항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어쨋든 도심에 숨통을 틔우는 하천이 생긴것은 반가운 일이.. 2010. 2. 2.
청계천의 역사와 현재 청계천은 지금의 한강처럼 조선시대 서울의 도심부를 관통하는 중요한 도시하천이었다.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이전부터 흐르고 있었다.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전 청계천은 자연 상태의 하천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울의 지리적 특성상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도성 한가운데로 물길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조선왕조가 도성 안에 있는 수로를 정비하기 전에 이미 자연스럽게 물길이 형성되어 있었다. 서울의 기후는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봄·가을에는 건조하고 여름에는 고온다습 하였다. 따라서 청계천은 비가 적은 봄, 가을은 대부분 말라있는 건천 (乾川)이었던 반면,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 우기에는 조금만 비가와도 물이 넘쳐 홍수가 날 정도로 건기, 우기에 따라 유량의 변화가 심하였다. 더구나 청.. 2010. 2. 1.
국립민속박물관_3관 일생관 2010.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