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여행/역사탐방

조선 한양 육조거리 @ 현 세종로

by 블루청춘 2010. 4. 17.
조선시대 한양의 육조거리는 1394년 한양천도에 따라 정궁인 경복궁이 영건되고, 의정부를 비롯한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의 육조 등 주요 관아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 좌·우에 건설되면서 형성되었다. 육조거리는 광화문 앞에서 황토현(黃土峴, 현재 광화문사거리)까지에 이르는 대로로 오늘날의 세종로의 전신이다. 이 거리는 중국 역대 도읍지의 주작대로(朱雀大路)의 기능을 하였으며, 신라 왕경의 관도(官道), 발해 상경 용천부의 주작로, 고려의 관도와 같은 조선시대 한양의 어가(御街, 대궐로 통하는 길, 도성 내 제일의 도로)였다.

≪태조실록≫ 권8 태조 4년 9월 29일조에 경복궁의 낙성 사실을 기록하면서 "후에 궁을 쌓았는데, 동문을 건춘(建春), 서문을 영춘(迎春), 남문을 광화(光化)라 하였다. (중략) 문(광화문) 좌·우쪽에 의정부·삼군부(三軍府)·육조·사헌부 등 각사(各司)의 공해(公 )를 나누어 배열하였다."라고 한 것으로 육조거리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각 관아의 청사가 대략 준공되기까지는 궁궐을 지은 후 2·3년의 시일이 더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태조 4년(1395)년 기사의 내용에 궁성을 쌓았다고 하였지만, 경복궁을 두른 궁성을 쌓은 것은 태조 7년(1398) 봄부터이다. 따라서 궁성 남문 밖의 관아의 완성은 궁성의 준공과 거의 같은 시기로 보여진다. 예로 삼군부를 짓게 한 것은 태조 6년 6월이며, 태조 7년 윤5월에 태조가 흥천사(興天寺, 오늘날 덕수궁 위치에 있던 신덕왕후 강씨의 원찰)에 거둥하면서 도평의사사(후의 의정부)의 새로 지은 청사로 가서 구경하였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육조 등 관아의 건설은 왕궁·도성·궁성 등의 대역사와 병행하여 진행되었던 만큼 왕조실록에 그 건설상황이나 내용에 대한 기록이 별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신도의 건설과 함께 관아의 영건도 이루어졌다는 것은 여러 정황을 미루어 보아 알 수 있다. 태조 7년 4월 26일에 임금이 신도팔경(新都八景)을 그린 병풍 한 벌씩을 좌정승 조준과 우정승 김사형에게 내리자 봉화백(奉化伯) 정도전이 필경시를 지어 완성된 도성의 모습을 찬양하고 있다. 즉 기전산하(畿甸山河, 서울을 중심한 산하의 형세), 도성궁원(都城宮苑, 성곽과 궁궐의 모습), 열서성공(列署星拱, 여러 관아들이 정연히 배열된 모습), 제방기포(諸坊碁布, 여염집들이 바둑판처럼 자리잡고 있는 모습), 동문교장(東門敎場, 동대문 밖 살곶이벌의 국립목장), 서강조박(西江漕泊, 삼개나루 서강에 정박한 배들의 모습), 남도행인(南道行人, 남쪽의 강을 건너 도성으로 들어오는 행인들의 모습), 북교목마(北郊牧馬, 북쪽 교외목장의 군마들의 모습)의 내용을 읊고 있다. 이중 제3경인 '열서성공'은 궁궐 앞의 여러 관아들이 북극성인 궁궐을 가운데로 하고 북두칠성 등의 별로 둘러싸여 배열되어 있는 모습을 읊은 것으로 새 도읍으로서의 이상도시인 한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정도전의 시를 통해 그 모습을 살펴보자.


여러 관아 높은 건물 마주보며 서있는 것이(列署巖嶢相向)
하늘의 별들이 북두칠성을 둘러쌌네.(有如星拱北辰)
달 밝은 새벽 관청거리 물같이 고요한데(月曉官街如水)
말 구슬 소리 들려오고 티끌 한 점 일지 않누나.(鳴珂不動纖塵)
또 권근(權近)은 열서성공을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줄 같은 곧고 긴 거리 넓기도 한 것이
별들이 둘려있듯 여러 관청 벌려있데.
관원의 수레 구름처럼 궁궐문 향해 모여드는데
훌륭한 그 사람들 밝은 임금 보좌한다네.
여러 가지 정사는 큰 업적 이룩하고
영걸(英傑)한 인재들 모두 특출하다네.
거리에 넘치는 명도(鳴道)소리 들리니
조관들 물러가노라 지금 한창 붐비네.
또 권우(權遇)도 열서성공을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하늘 높이 솟은 궁궐 깊숙하기도 한 것이
별들이 벌여있듯 새 관청들 많네.
오대(烏臺, 사헌부)와 봉각(鳳閣, 의정부) 그 중에서도 맑고 화려한데
마주서서 바라보는 모습 우람하고 높네.
밤마다 숙직하노라 밝은 촛불 끄는데
새벽에 조회 나갈 때면 말 구슬소리 울려오네.
빛나는 임금님의 덕화(德化) 옥의 티도 없는 것이
오늘에서야 온 백성들 은혜 물결에 젖는다네.
이러한 시들을 통하여 태조 7년(1398) 여름까지는 경복궁 앞에 육조관아를 비롯한 여러 관아건물들이 보기 좋게 이루어지고, 거리도 정결하게 꾸며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육조거리에는 광화문을 중심으로 동쪽에 의정부·이조·한성부·호조·기로소가 위치하고, 서쪽에 예조·중추부·사헌부·병조·형조·공조 및 의영고와 사역원이 자리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