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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서울52

왕릉 따라 ‘조선왕조기행’ 떠나볼까 왕릉 따라 ‘조선왕조기행’ 떠나볼까 유네스코가 최근 조선왕릉 40기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면서 왕릉을 다시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일반인들에게 왕릉 나들이는 꿈도 꿀수 없는 일이었다.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 잠든 왕릉에 일반인들이 발을 들여놨다간 능지기(참봉)에게 호되게 얻어맞고 쫓겨나는게 고작이었다. 왕릉 주변으로 조성된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등은 땔감이나 집짓기로 탐스러운 나무들이었지만 벌목은 커녕 낙엽 한 장 외부로 유출할 수 없었다. 이렇게 지켜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자연과 인간의 공간’ 왕릉이 한국에만 모두 42기에 달한다. 이들 중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 그리고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을 제외한 39기가 서울에서 100리(약 40㎞)안.. 2009. 6. 20.
090510 낙산공원 서울성곽 답사 서울 성곽(-城郭)은 조선시대 서울을 둘러쌌던 성곽이다. 1395년(태조 4년)에 서울을 방위하기 위해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따라 쌓았다. 성곽을 천자문의 하늘 천(天) 자부터 조상할 조(弔) 자까지 97개 구역으로 나누었다. 여덟 방위로 4대문(동 흥인지문, 서 돈의문, 남 숭례문, 북 숙정문)과 4소문(동북 홍화문, 동남 광희문, 서북 창의문, 서남 소덕문)을 지었다. 숙정문은 숨겨진 문으로 문루를 만들지 않았다. 1422년(세종 4년)에 흙으로 쌓은 곳을 모두 돌로 다시 쌓는 등 성을 대대적으로 고쳤다. 1451년(문종 1년)에도 성을 고쳤지만 임진왜란 때 일부가 부수어졌다. 1616년(광해군 8년), 1704년(숙종 30년), 1743년(영조 19년) 고쳐졌다. 일제 시대 때 도시계획과 한국.. 2009. 6. 20.
090421 서대문형무소답사 서대문형무소 정문. 일제가 독립운동 투옥자들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한 망루와 담장이 보존되어 있다. 서대문형무소 전경. 옥사들이 몇동은 없어지고 1987년 서울구치소가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독립투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하였다. 일제시대에는 독립투사들을 투옥하였고, 해방후에는 주로 정치사상범을 투옥하였다. 수많은 장기수들이 이곳에 있었다고한다. 모형물 사형집행현장 재현해놓은 모형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있는 감옥안 고문하기 위한 기구. 마치 관처럼 꼼짝못하게 가두어 놓고 2틀간이나 고문하였다고 한다. 옥사 복도. 현재 7개동의 옥사가 보존되어 있고 그 중 1915년에 지어진 제 10.11.12옥사는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형장의 담벼락. 사형장. 1923년에 지은 목조건물로 조국독립의 한을 품은.. 2009. 6. 20.
090419 의릉, 한예종 답사 이문동과 석관동 경계에 있는 의릉 입구. 한예종과 바로 옆에 붙어있다. 경종과 그의 왕후가 있는 곳이다. 제사당 제사당 마당앞 비석 경종의 무덤. 주변에 호랑이, 양, 文臣과 武臣들이 호위를 하고있다. 경종의 무덤. 주변에 호랑이, 양, 文臣과 武臣들이 호위를 하고있다. 의릉안에는 구 안기부청사가 있다. 이문동 정보부사이다. 이곳에서 이후락이 7.4성명을 발표했다고한다. 한국종합예술대학교에는 이렇게 벽화를 그리는 학생들이 많아보였다. 이 건물도 역시 구 안기부건물을 문화체육부에서 매입한것이다. 2009.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