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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따라 ‘조선왕조기행’ 떠나볼까 왕릉 따라 ‘조선왕조기행’ 떠나볼까 유네스코가 최근 조선왕릉 40기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면서 왕릉을 다시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일반인들에게 왕릉 나들이는 꿈도 꿀수 없는 일이었다. 천하를 호령하는 왕이 잠든 왕릉에 일반인들이 발을 들여놨다간 능지기(참봉)에게 호되게 얻어맞고 쫓겨나는게 고작이었다. 왕릉 주변으로 조성된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등은 땔감이나 집짓기로 탐스러운 나무들이었지만 벌목은 커녕 낙엽 한 장 외부로 유출할 수 없었다. 이렇게 지켜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자연과 인간의 공간’ 왕릉이 한국에만 모두 42기에 달한다. 이들 중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 그리고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을 제외한 39기가 서울에서 100리(약 40㎞)안.. 2009. 6. 20.
090510 낙산공원 서울성곽 답사 서울 성곽(-城郭)은 조선시대 서울을 둘러쌌던 성곽이다. 1395년(태조 4년)에 서울을 방위하기 위해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따라 쌓았다. 성곽을 천자문의 하늘 천(天) 자부터 조상할 조(弔) 자까지 97개 구역으로 나누었다. 여덟 방위로 4대문(동 흥인지문, 서 돈의문, 남 숭례문, 북 숙정문)과 4소문(동북 홍화문, 동남 광희문, 서북 창의문, 서남 소덕문)을 지었다. 숙정문은 숨겨진 문으로 문루를 만들지 않았다. 1422년(세종 4년)에 흙으로 쌓은 곳을 모두 돌로 다시 쌓는 등 성을 대대적으로 고쳤다. 1451년(문종 1년)에도 성을 고쳤지만 임진왜란 때 일부가 부수어졌다. 1616년(광해군 8년), 1704년(숙종 30년), 1743년(영조 19년) 고쳐졌다. 일제 시대 때 도시계획과 한국.. 2009. 6. 20.
090507 강화도 역사기행 답사 '2009체험학습 강사양성과정' 주관: 나눔연대, 한국체험학습강사협회 오늘은 4번째 현장답사를 하였다. 강화도는 지붕없는 박물관이라는 표현이 있을정도로 선사시대부터 현대사까지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옛부터 도성인 서울에서 60km정도 떨어진 거리고 지리적으로 가깝고, 강화도 주변의 물살이 빠르고 배를 정박할수있는 항이 2곳밖에 없어 방어를 하기에 천하의 요새였다고 한다. 또한 적이 도성인 서울을 점령하려면 한강을 따라 올라오는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는데, 강화도는 이러한 적의 침입경로를 가장 먼저 차단하는 지리적 요충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고려때는 몽고, 조선시대에는 일본과 중국의 침략에 맞섰고, 조선말기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등 서양세력의 침입이 있었던 곳이다.또한 일본과의 굴욕적인 강화도조.. 2009. 6. 20.
090430 국립중앙박물관 답사 2009.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