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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서울52

청계천의 역사와 현재 청계천은 지금의 한강처럼 조선시대 서울의 도심부를 관통하는 중요한 도시하천이었다.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이전부터 흐르고 있었다.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전 청계천은 자연 상태의 하천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울의 지리적 특성상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도성 한가운데로 물길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조선왕조가 도성 안에 있는 수로를 정비하기 전에 이미 자연스럽게 물길이 형성되어 있었다. 서울의 기후는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봄·가을에는 건조하고 여름에는 고온다습 하였다. 따라서 청계천은 비가 적은 봄, 가을은 대부분 말라있는 건천 (乾川)이었던 반면,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 우기에는 조금만 비가와도 물이 넘쳐 홍수가 날 정도로 건기, 우기에 따라 유량의 변화가 심하였다. 더구나 청.. 2010. 2. 1.
091201 강경대 기념관 @ 숭인동 1991년 4월 24일 명지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광철이 시위 참여 후 학교로 돌아오던 도중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틀 뒤인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위해 구출대회가 진행되었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게 되었다.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 경찰관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시위 진압을 시작하자, 강경대는 학교 쪽으로 도망치기 위해 1.5m 높이의 담벽을 넘으려다가 경찰에게 붙잡혀 쇠파이프로 두들겨 맞은 뒤 그대로 방치되었다. 이러한 광경은 곧 다른 학생들에게 목격되어 이들에 의해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시간 만에 사망하였다.[2][3] 시위와 분신 [편집]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4월 27일, 노태우 대통령은 사건의 책임을 물어 안응모 내무부 장관을 경질시켰다.[4] 학.. 2009. 12. 1.
091201 서울성곽 5차답사 @ 동대문~정업원터~혜화동 2009. 12. 1.
091117 서울성곽 5차답사 남산~동대문 이른가을에 시작하여 엄동설한이 되어버린 서울성곽답사의 4번째, 남산일대를 돌아보았다. 회현역에서 시작하여 서울타워, 봉수대, 신당동일대, 흥인문까지 돌아보았다. 영하를 밑도는 추운 날씨임에도 함께한 선생님들과 다녀보니 힘들줄도 모르고 보았다. 나중에 체험학습 코스로 한번 돌아보리라... ▲일본식 축대와 모서리마감 ▲54년에 지어진 교회.. 이런양식을 뭐라하지 ▲교회에 머릿돌 ▲남산 시민아파트의 축대를 뚫고자란 나무 ▲무한도전의 배경이었던 남산시민아파트 ▲비둘기집 ▲성곽의 모습을 보러 내려가신 이종하, 김명선 선생님 ▲저멀리 북악산과 남산사이의 서울의 모습 ▲남산에서 내려다본 한옥마을 ▲팔각정 ▲서울타워 전망대에는 연인들의 흔적이... ▲심지어 수갑까지,, 이런 행위를 하는애들은 항상 헤어지던데 ▲남산봉수.. 2009. 11. 18.